2009년 8월 13일 목요일

I believe...

 

"요즘 한국 교회는 세상의 빛이 되기엔 너무 을씨년스럽게 어두컴컴하고,

세상의 소금이 되기엔 안에서부터 너무 역겨운 냄새가 번져 나오는 듯합니다."

 

1978년 출간했던 저서 <저 낮은 곳을 향하여>를 손봐 <한국 교회여, 낮은 곳에 서라>는 제목으로 다시 내놓으며 한완상 前 부총리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YS정부의 초대 통일부총리, DJ정부 교육부총리,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여러 대학 총장을 역임했다는 이 분은 잘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한 기사를 통해서 접한 그 분의 이름과 사진이 저에게는 전혀 새로운 것이었으니 말이죠.

 

교회와 기독교, 더 크게 종교라는 개념 역시 저에게는 낯설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진실된 마음으로 어느 종교와 절대적인 존재를 향해 믿음을 맹세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낯설고 멀리있는 것이라 줄곧 생각해왔거든요. 다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공간과 생각을 공유하면서 이런 사람들이 믿고 맹세하는 것이라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기억은 있습니다.

 

잠시 호주에서 생활할 때였습니다. 몇 개월을 같이 지냈던 누나들이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는 분들이셨죠. 멀리 떨어진 타국이지만 가끔씩 모여서 기도도 드리고 기쁜 일, 슬픈 일을 함께 나누는 그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한국에서는 기독교인들의 좋지않은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고, 신앙이 아닌 수단으로써 종교를 이용하는 일이 흔한 한국교회에서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을리 없습니다. 오히려 괜한 반감을 갖고 있었죠.

 

그런 저에게 두 누나들, 그리고 믿음을 함께 하시는 그 분들은 종교에 대한 생각을 다시 정리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불확실한 삶 속에서 자신있는 믿음의 기회를 한 번 갖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죠.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가 교활한 것이 환경이 바뀌어 버리니까 그 간절했던 생각들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하네요.

 

"예수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용서를 기도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의 모습, 그것이 바로 부당한 권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우아한 패배죠. 하지만 요즘 교회는 어떻습니까. 기독교 신자들이 가장 많이 입에 올리는 말이 '승리'예요. 기도할 때 습관처럼 하는 말이 '오늘도 승리하게 하소서'입니다. 종교의 참 승리는 우아한 패배와 함께 성취됩니다. 나의 행복을 갈구하는 저급한 쾌락의 원리가 아니라 남을 위해 자신의 불익을 감수하는 용기를 달라는 기도여야 합니다."

 

한완상 前 부총리의 말처럼 지금의 한국의 기독교회들은 승리를 외치고, 패배를 두려워하며, 자신의 불익을 피하기 위한 믿음을 외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믿음을 갖고 싶어했던 그 대상과 지금 보이는 이 믿음들은 왜 이리도 다른 것일까요? 물론 그렇지 않은 믿음을 갖고 있는 교회와 신자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호주에서 내가 생각했던 믿음과 지금 느껴지는 믿음이 다르다는 것이 너무 낯설게 느껴집니다.

 

믿음과 신앙, 종교... 무엇을 무어라 정의해야 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성경과 같은 신앙서에서 말하는 내용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믿음이 모든 존재를 뛰어넘는 위대한 힘을 지닌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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