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8일 목요일

Hi Seoul? Colorful Daegu?

길을 걷다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문득 문득 스쳐지나 가는 것들이 있습니다. 몇 개월 전부터 그게 되게 눈에 거슬리더군요. 지방자치단체를 홍보하는 문구 말입니다! Hi Seoul, Colorful Daegu, Dynamic Busan, Only Jeju 등 모든 자치단체가 이런식으로 영어를 사용한 문구로 홍보를 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더라구요. 굳이 의미도 알기 힘든 영어를 사용해야지 홍보가 되는 것도 아닐테고, 우리말로 표현하는 게 훨씬 쉽고 이해하기 힘들텐데 말이죠.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변명으로 해명을 하려고 하겠죠.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화 시대에 발맞추어 국제적인 이미지를 알리기 위한 선택이었다? 뭐 대충 이런 식으로 둘러댈겁니다. 그런데 과연 그 말이 맞는 말일까요? 분명 지금은 세계화시대 속에 있고, 그 속에서 영어라는 언어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자국민들도 그 의미를 알지 못하는 홍보를 통해서 어떻게 세계화를 하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는 노릇이죠.

 

직원들이나 주민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이나, 전문업체를 통한 브랜딩을 통해서 해당 로고나 문구를 만들었겠죠? 당연히 그 과정에서 예산이 책정되었을 것이고, 그걸로 끝나는 건 아니잖아요? 거리에 현수막 내걸고, 광고판 제작하고, 버스정류장, 쓰레기통 등 공공시설물에 홍보문구와 로고를 부착하는 작업을 할테죠. 단순한 부탁이 아니라 아예 새 것으로 교체해버리는 경우도 자주 보이더군요. 이런 걸 보고 전시행정이라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주제로 포스팅을 하려고 자료 수집 중이었는데, 한글날을 맞이하면서 신문기사가 나와버렸네요. 제가 먼저 포스팅하지 못해서 아쉽긴하지만, 같은 생각을 가진 기자가 있었다는 게 기분은 좋네요. 아래에 해당 기사 전문을 첨부합니다.

 

 

 

 

 

지자체 선전문구 "영어범벅 심하네"
하이 서울·다이내믹 부산·컬러풀 대구 등
“외국어로 포장 오히려 의미 전달 떨어져”
 
한글이 인도네시아 소수민족 찌아찌아족의 문자로 채택돼 우리 국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에는 한글학자와 민간 학회의 노력이 컸다. 누구보다 우리 말과 글을 바로 알리고 보급하는 데 앞장서야 할 공공기관은 이와 반대로 가고 있다. 영어가 아니면 세련되지 않은 것처럼 여기면서 아예 한글을 ‘질식’시키고 있다.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본지가 전국 16개 광역시·도와 75개 시가 내세우는 선전 표어(슬로건)를 전수 조사한 결과, 총 91개 지자체 중 58곳(63.7%)이 영어로 된 문구를 쓰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16개 광역시·도 중에 한글로 된 문구를 쓰는 전남·북과 따로 표어를 두고 있지 않은 강원도를 제외하고 80%가 넘는 13곳이 영문 표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하이(Hi) 서울’, ‘다이내믹(Dynamic) 부산’, 컬러풀(Colourful) 대구’, ‘프라이드(Pride) 경북’, ‘울산 포유(For you)’ 등이 그 예다.

전국 75개 시 중에서는 45곳이 영어로 된 표어를 내세운 가운데 특히 경남·북 지역의 지자체에서 영문 구호 사용비율이 높았다. 경남지역 10개 시 중에 ‘굿모닝(Good Morning) 진해’, ‘라이징(Rising) 사천’, ‘액티브(Active) 양산’, ‘블루시티(Blue City) 거제’ 등 8곳이 영문 구호를 채택했다. 경북에서도 ‘뷰티풀(Beautiful) 경주’, ‘센트럴(Central) 김천’, ‘저스트(Just) 상주’, ‘러닝(Running) 문경’ 등 8개 지자체가 영문을 선호했다.

한글학계에서는 서울시가 2002년 ‘하이(Hi) 서울’을 표어로 지정하면서 각 지자체가 경쟁하듯 외국어 표어 제정 대열에 나섰다고 보고 있다.

영문으로 단순 명료한 표어를 만들다 보니 지자체 간 표어가 중복되는 촌극도 빚어졌다. 울산과 경남의 김해는 ‘울산 포유(For You)’, ‘김해 포유(For you)’라는 비슷한 표어를 쓰고 있고, ‘예스(Yes) 구미’, ‘예스(Yes) 의왕’도 유사해 차별성을 주지 못하고 있다.

영어와 우리말을 뒤섞어 전문가조차 쉽게 뜻을 알지 못하는 표어를 선택한 지자체도 있다. 경남 밀양시의 ‘미르피아(Mirpia) 밀양’이 대표적이다. ‘용’을 뜻하는 우리말 ‘미르’에 ‘유토피아’(이상향)라는 영어 단어를 합친 것이라고 하는데, 이 뜻을 아는 밀양시민은 별로 없다. 한 지자체 담당 공무원은 “지역을 알리는 슬로건은 국내용뿐 아니라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든다는 의미도 있어 영어를 쓸 수밖에 없다”며 “뉴욕의 ‘I♡NY’처럼 세계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슬로건을 만들면 국가 이미지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정책위원은 “지자체 구호에 영어를 쓰는 건 일종의 영어 사대주의”라며 “우리말로 해도 되는 표현을 외국어로 포장하려다 보니 오히려 전달력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우리말만으로 멋진 구호를 만들어낸 지자체도 있다. ‘천년의 비상, 전라북도’, ‘한바탕 전주, 세계를 비빈다’, ‘의정부, 행복특별시’가 좋은 사례다. 전북도의 경우 2005년 7월부터 ‘나우(NOW) 전북’이라는 영문 표어를 써오다 의미 전달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많자 3년여 만인 지난 1월 한글 문구로 바꿨다. 김중섭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영어를 쓰는 게 국제화가 아니라 좋은 우리말을 이용해 표어를 만들고 외국인 홍보에 필요하다면 우리 표어를 쓰고 영어로 병기하면 그것이 진정한 국제화”라며 “정부 차원에서 의식 전환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태영 기자 wooahan@segye.com                                                           
원문기사 :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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