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9일 금요일

기아자동차의 롤모델은 BMW?

"11월에 나올 기아차 준대형 세단 'K7'을 기대해주세요. 아우디 A6, 렉서스 ES350 등 수입 고급세단과 본격적으로 맞붙게 될 겁니다."

 

기아자동차의 디자인 총괄 부사장인 피터 슈라이어가 프로젝트명 'VG'로 알려졌던 기아의 준대형 세단의 출시에 대한 언급을 했습니다. 실제로 출시될 모델명은 'K7'이라고 하는데요. 기아차는 K7을 시작으로 우선 세단형 차종에 '알파벳+숫자' 형식의 차량 이름을 달 예정입니다. 'K'는 기아(Kia)의 영문 이니셜이며, 숫자가 높을수록 대형차를 뜻한다고 하네요. 이런 네이밍 계획에 따라 내년 5월 중형세단 로체 후속모델(TF)의 이름은 'K5'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에 그가 언급한 내용은 기아자동차의 신모델 또는, 네이밍 방법의 변화뿐만 아니라 기아자동차가 가고자 하는 길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아우디와 폭스바겐의 디자인 총괄 책임자를 맡았던 피터 슈라이어가 기아자동차에 영입되면서 상당히 큰 변화와 발전을 이루어낸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의 디자인 역량 때문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자동차의 개발이 디자인 하나 잘 한다고 성공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구요. 디자인 변화에 대한 기아자동차와 현대기아자동차그룹 전체적인 지원이 따라주었을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오랫동안 유수의 독일 자동차회사에서 디자인을 담당한 디자이너로서의 피터 슈라이어에 더해진 마케팅 역량이 큰 힘을 발휘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국내에서도 1인자의 자리에 서지 못했음은 물론, 세계시장에서도 뚜렷한 인지도를 갖지 못한 기아자동차의 디자인에는 마케팅 요소가 상당히 크게 작용할 것입니다. 폭스바겐과 아우디의 디자인을 주물렀던 피터 슈라이어가 아무리 뛰어난 디자인을 선보인다해도 팔리기위한 가격산정, 기술문제 등이 개입되면 디자인의 제약은 상당히 커질 것입니다. 그 환경 속에서 피터 슈라이어 영입 이후의 기아가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마케팅을 효율적으로 감안해내는 디자이너의 역량이 큰 힘을 발휘했을 거란 말이죠.

 

그래서 이번에 기아가 내놓은 네이밍 방법의 변화에도 피터 슈라이어의 힘이 크게 작용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미 기아라는 브랜드 자체와 로고에 대해서도 자신의 뚜렷한 견해를 피력했던 그인 만큼, K7이라는 이름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미 국내에서는 르노삼성자동차에서 숫자를 활용한 네이밍을 하고 있는데요. SM3, SM5, SM7, QM5가 그것이죠. 이런 네이밍 방식은 BMW가 대표적입니다. BMW는 세단형 모델에는 1~7까지 홀수를 사용하고, 쿠페형모델에는 4~8까지 짝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숫자 뒤에는 2자리 숫자를 덧붙여서 배기량이나 차급을 나타내고 있죠. SUV모델이나 스포츠카에는 숫자 앞에 X, Z 등의 알파벳을 붙여서 구분하고 있고, 예외적으로 Z9이라는 모델에는 가장 큰 숫자인 9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기아자동차의 네이밍 방식 역시 BMW를 연상시키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이런 방식은 BMW 뿐만 아니라 여러 메이커가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KIA를 상징하는 알파벳 'K'와 숫자의 조합이라는 면에서는 BMW보다는 아우디에 더 가깝다고 볼 수도 있구요. 게다가 피터 슈라이어가 아우디에서 일한 경력도 있고 K7의 디자인 요소에는 아우디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일부 발견할 수도 있어서 제 의견에 동의를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이런 연관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건, 피터 슈라이어가 제안하는 기아자동차의 롤모델에 관한 것입니다. 독일 태생에 독일자동차 회사에서 디자인을 담당해서이기도 하겠지만, 간결한 직선을 활용한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그의 디자인은 올해 초까지 BMW의 디자인을 총괄했던 크리스 뱅글을 연상시킵니다. 무엇보다 기존의 브랜드 디자인 패턴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를 통해서 변화를 꾀한다는 점에서 크리스 뱅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피터 슈라이어는 기아차 전 차종의 디자인 정비작업이 끝나는 것이 2012년이라 설명합니다. 작년 9월 출시한 '쏘울'을 시작으로 이후 나온 차량에 전부 기아차만의 디자인 아이콘을 심었는데 기아차가 전 세계 어느 곳에 놓여 있든 기아차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의 목표입니다. 예를 들면, BMW의 '키드니 그릴(2개의 콩팥처럼 보이는 BMW 라디에이터그릴 모양)'이나, 아우디의 '싱글프레임(라디이에터그릴부터 앞범퍼 하단까지 길게 하나로 이어지는 아우디의 전면 디자인)'에 비견될만한 기아차의 '호랑이 코(Tiger Nose)'를 형상화한 라디에이터그릴을 정착시키겠다는 거겠죠.

 

객관적으로 크리스 뱅글에 비하면 피터 슈라이어의 파워가 조금 약한 것이 사실이지만, 현존 3대 자동차 디자이너에 꼽히는 두 사람은 꽤나 닮아있는 것 같습니다. 피터 슈라이어가 롤모델로 삼은 것이 BMW가 아니라도 좋지만, 과연 아우디, BMW, 폭스바겐과 같은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를 기아가 따라잡을 수 있을지는 상당히 기대가 되는 부분입니다. 당연히 그들의 명성이나 인지도를 따라잡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겠지만, 통일된 디자인을 통한 고객인지도를 통해서 독일 아우토반을 달리는 기아자동차를 보게되는 건 충분히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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